"세상은 나로 돌아가"...단숨에 천만 배우 됐다가 '연예인병' 심하게 걸려 '절친한테도 손절' 당한 배우

하이뉴스 2025-05-14

"세상은 나로 돌아가"...단숨에 천만 배우 됐다가 '연예인병' 심하게 걸려 '절친한테도 손절' 당한 배우

이준기는 1982년생으로 지난 2001년 한 의류광고 지면 광고 모델로 데뷔했다. 배우의 꿈을 안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한 그는 당구장, 호프집, 주유소, 패스트푸드점 등에서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며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바퀴벌레가 득실거리고 겨울에는 수도꼭지가 얼어서 물이 안 나오는 옥탑방에서 힘든 시절을 겪은 그는 한 해에 50번의 오디션을 낙방하는 시련에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도전했고, 오디션 박람회를 통해 만난 한 기획사와 계약하면서 본격적으로 연기활동을 시작했다.

단역과 조연으로 연기 경력을 쌓던 이준기는 2005년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는 작품을 만나게 되는데, 바로 이준익 감독의 영화 '왕의남자'이다.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광대 '공길'과 '장생'이 예기치 않게 폭군 '연산군'과 얽히면서 벌이지는 영화 이야기 속에서 그는 여장을 한 '공길' 역을 맡아 중성적인 비주얼로 열풍을 불러일으키며 무명에서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이준기가 맡은 '공길' 역은 약 한 달 동안 이어진 3번의 오디션에 참여하면서 다른 지원자들과 차별화될 수 있도록 연기는 물론 비주얼과 아크로바틱 동작을 연구해서 3000:1의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뚫고 뽑히게 되었다고 한다.

해당 작품으로 이준기는 '제42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 신인연기상', '제43회 대종상 신인남우상, 국내 남자인기상, 해외 남자인기상' 등 모든 상을 휩쓸며 신드롬급 인기를 얻게 되었다.

무명에 가까운 신인배우에서 대한민국을 뒤흔든 천만 영화배우가 된 이준기는 그 명성과 인기에 취해 주변을 돌아보지 못한 채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있었다. '왕의 남자로' 국내 최초로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대히트를 기록했고, 이준기는 단숨에 스타로 떠올랐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성공은 그에게 독이 되었다

 

"내가 잘하니까 다 먹고 사는 거 아니야?" 연예인 병 심하게 걸려

이준기는 당시를 회상하며 “세상은 나로 돌아간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매니저 없이는 외출도 하지 않았고, 인터뷰나 대인 관계에서도 건방진 태도를 보였다. 심지어 스태프들에게도 “내가 잘하니까 다 먹고사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을 가졌다고 한다.

쉴 새 없는 일들로 인해 제정신으로 살 수 없었던 이준기의 연예인병은 점점 심각해졌고, 순식간에 달라진 이준기의 시건방진 태도 변화를 를 가장 먼저 알아차린 건 무명시절부터 알고 지냈던 친구들이었다. 

그들은 “우리는 너를 보기가 역겹다. 우리가 알던 이준기가 아니다. 말도 섞기 싫다”라는 직설적인 말을 했다고 한다. 이 충격적인 말에 그는 일주일 동안 매일 밤 울며 자신을 되돌아보았다고 한다. 그는 “나약해진 내 자신 안에서 나오는 건방짐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친구들의 충고 이후, 이준기는 초심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했다. 현장에서 분위기 메이커를 자처하고, 스태프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외우며 진심을 다해 대했다. 그는 “비싸게 배웠다. 그 이후로는 몸에 베일 정도로 되뇌인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드라마 ‘조선 총잡이’, ‘달의 연인 – 보보경심 려’, ‘악의 꽃’ 등 다양한 작품에서 활약하며 배우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또한, 액션 연기를 위해 7년간 탄수화물을 끊는 등 철저한 자기관리를 통해 연기력과 체력을 동시에 갖춘 배우로 거듭났다

이준기의 고백은 연예인병이 특정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님을 시사한다. 갑작스러운 성공과 주목은 누구에게나 오만함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주변의 진심 어린 충고와 자기반성이 필요하다. 이준기의 이야기는 성공의 이면에 숨겨진 함정과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의 진정성 있는 반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그의 고백은 많은 이들에게 경각심과 함께 깊은 울림을 전하고 있다.